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13> 5. 두 서울 사이, 길목 (1) 강을 건너는 발걸음, 젊은 선비들의 개성여행
수정 : 2020-04-02 08:31:23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13>
5. 두 서울 사이, 길목
(1) 강을 건너는 발걸음, 젊은 선비들의 개성여행
글 : 이재석 DMZ생태평화학교 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 만나는 임진강] 저자
▲ 조선후기 강세황의 그림. 개성시가
“송경은 고려조의 수도인지라 산수가 기려하여 동방에 으뜸간다. 진작부터 한 번 가서 찾아보려고 더불어 유람할 것을 약속하였다. 3월 14일에 성경숙ㆍ채기지ㆍ안자진이 먼저 출발하였다. 장포 냇가에 당도해서 술 두어 순배를 마시고 저물녘 유수의 별장에 투숙하였다.”
채수의 개성여행기 앞부분이다. 1477년 봄, 채수는 성현, 안침과 함께 개성으로 향한다. 여기에 조위와 허침이 다른 길로 따라와 합세한다. 모두 사가독서 하던 젊은 선비들이었다. 개국시기의 혼란을 멀찍이 벗어난 조선은 새롭게 일어나는 기운으로 충만했다. 조정은 쓸 만한 젊은 선비들을 골라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도록 배려한다. 이를 사가독서라 했는데 때로 글방을 벗어나 산천을 여행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서울에서 개성을 가자면 임진강을 건너야 한다. 이들은 임진강을 건너기 전 당시 개성유수로 있던 성임의 집에서 하루를 머문다. 성임은 일행 중 한 사람인 성현의 큰형이다. 이들이 묵은 장포는 임진강을 지척에 둔 문산읍 내포리다. 다음날 임진강을 건너서는 적전을 지나고 보정문을 통해 개성으로 들어간다. 따로 출발한 조위와 허침이 이때 합세한다. 여행은 6일간 이어졌다. 먼저 화원, 목청전, 성균관, 만월대 등 개성의 중심구역을 찾은 뒤 동쪽 교외인 천마산, 박연, 추암, 영통사 등을 둘러본다. 그리고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벽란도 구역을 여행한 뒤 헤어져 각자 서울로 돌아온다.
▲ 관음굴/ 돌부처 둘이 바위 구멍에 앉아 있는데, 동쪽은 달달박박이요, 서쪽은 노힐부득이다
앞뒤 노정으로 미루어 이들은 낙하나루로 건너갔다가 임진나루를 통해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 여행기에는 강을 건너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없다. 임진강은 그저 거쳐 가는 길목의 한 굽이였을 뿐, 채수는 오로지 송경에 주목했다.
패기 넘치는 젊은 선비들에게 개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황폐한 도성 내 전각을 둘러보며 이들은 5백년 고려왕조의 무상함을 회고한다. 고려의 멸망은 문란한 정치의 당연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고려 신우가 일찍이 화원에서 날마다 술 놀이만 일삼으며, 망령되이 요동을 정벌할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태조께서 회군하여 화원을 수백 겹으로 에워싸니…(채수. 「유송도록」 중에서)”
▲ 영통사/ 묵은 비갈이 있으니, 바로 문종의 아들 후(의천)의 공덕비이다
하늘의 뜻을 거스른 고려는 소멸의 운명이었고 조선의 건국은 필연이었다. 선비들은 개성이 황폐해진 이유를 하늘의 뜻이라고 못 박아 말하고는 내내 주변의 명승을 찾아 즐긴다. 박연에서는 “조물주가 이 지경까지 이를 줄은 몰랐다.”며 탄성을 지른다. “군산 동정호의 장관으로도 이보다 나을 것이 없을 줄로 생각된다.” 장원정에 대한 진술이다. 여행기에는 발길 닫는 곳곳에 대한 감탄의 수사가 넘친다. 이들에게 개성은 더 이상 운명이 걸린 정치현장이 아니었다. 그저 훌쩍 떠나와 즐기는 아름다운 여행지였다.
동행한 채수와 성현은 여행만이 아니라 정치적 부침도 같이 한 지기였다. 선대는 크게 달랐다. 채수의 고조부는 고려에 의리를 지키며 은둔한 두문동 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이에 비해 성현은 개국공신의 후손이다. 선대의 길은 달랐지만 둘 사이에는 이에 대한 일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조선은 단단해졌다.
“분명 알리라./ 여행길은 당연히 봄나들이라고/ 지나는 마을마다 안개 걷히자/ 산들은 시샘하듯 닿아서고/ 강기슭엔 조수가 잔잔하게/ 물은 거슬러 흘러간다./ 이곳에 가면/ 분명 속이는 일도 다 사라지니/ 또 다시 갈매기들이/ 저절로 쪽배로 닿아온다.(허침. 「임진」 부분)”
안개가 걷히고, 강에는 어느덧 봄기운이 완연하다. 갈매기들은 스스럼없이 뱃전을 난다. 임진강은 이별의 슬픔도, 망국의 한도, 의리를 가늠하는 떨림도 잊었다. 나루에는 두 서울 사이를 오가는 발걸음만이 잔잔히 모이고 찰랑였다.
▲ 경천사 탑/ 광명한 모습이 옥과 같은데 정교하여 거의 인력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 목청전/ 임금의 진영을 뵈었다. 곧 태조의 구택이다.채수의 ‘유송도록’에 소개된 명소들(사진 순서대로)
#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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